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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

회고가 주는 힘 : 나의 2023년을 되돌아보며

by 시시함 2024. 5. 19.

회고가 주는 힘 :  나의 2023을 되돌아보며

이 글은 2024년 상반기가 끝나가는 오늘 2023년의 내가 어떤 상태였는지 돌아보기 위한 글이다. 그를 위해 올 초에 썼던 2023 회고를 꺼내본다. 그리고 2024년 하반기를 위해 무엇을 가다듬어야 할지 고민해보려 한다. 푸른색 글씨는 2024년 오늘 과거를 되돌아보며 덧붙인 문장들이다.


2023 회고

2023년에는 채용 한파 속 긴 취준 터널을 뚫고 지방의 작은 회사에 입사를 하게 되었다. 첫 커리어를 서울에서 시작하는 게 나에게 더 이롭지 않을까? 하는 고민도 있었지만 내 연고지인 지방에서 일을 할 수 있음이 더 기뻤다. 나는 소위 말하는 쌩 신입이고 신입은 어디서 일을 하든 일은 배우게 된다. 이걸 잘 갈무리하고 소화해서 내 것으로 만들고 나면 다음 스텝으로 나아가기 위한 주춧돌로 삼을 수 있으리라 그런 기대를 했다.

회사는 생각보다 작았고 작은 만큼 시간이 촉박한 일들이 많아서 신입이 회사의 프로세스나 포맷 등을 이해하는 과정을 거의 밟지 못하고 바로 프로젝트에 투입이 됐다. 총 n 년을 진행할 예정인 프로젝트로 이 회사가 시도해 본 적이 없으며 이해도가 없는 데이터로 분석을 진행해야 했다. 어쨌든 나는 회사와 회사의 사람들을 이해해야 하고 동시에 나에게 없던 통계적 지식들을 습득해야 했으며 동시에 부트캠프에서 아주 가벼이 여기고 넘어갔던 머신러닝에 대한 지식들도 습득해야 했다. 정말로 나는 아는 게 아무것도 없는 상태였다. 내가 뭉근히 알고 있던 데이터 분석에 대한 지식은 하주 하찮은 것들이었다. 지식에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이란 건 이렇게 중요하구나. 단순히 그런 환경에 노출되었다는 것 만으로 내가 손을 뻗어 꺼내올 수 있는 책들의 범위가 넓어지는 기분이었다.

첫 두 달은 퇴근 후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하루 종일 받아들이는 정보의 양이 너무 많아서 인지 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상 과포화 상태인데 그걸 인지하지 못하고 단지 내 체력이 부족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그렇게 운동을 등록하게 된다.

과포화 상태였단 걸 이후에라도 인지해서 다행이다. 당시 나에게 필요했던건 무언가를 더하는 행위가 아니라 빼는 행위였다. 솔직히 말해서 쉬는 법을 몰랐다.

상반기 : 체력 보충과 시간관리의 시작

크로스핏

참고로 나는 살면서 해 본 근력운동이라곤 2년 전에 했던 필라테스 6개월이 전부이다. 그 외에는 운동 자체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의자에 늘어진 피자치즈처럼 생을 보냈다. 크로스핏은 역도를 베이스로 심폐지구력과 유연성 그리고 끈기 등을 늘릴 수 있는 운동이다. 부상에 대한 위험도도 있지만 좋은 코치 아래에서 차근히 배우다 보면 어느 순간 무거운 역도 동작을 조금씩 수행할 수 있게 되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 당시에는 내가 너무 과한 운동을 시작했나 하는 고민도 있었지만 사실 크로스핏을 하지 않았으면 2023년을 버틸 수 없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몸이 자주 아프고 축나있던 취준 시절에는 30분의 햇빛 산책에는 약 2시간의 잠이라는 비용이 들었다. 하지만 작년 시월에는 부산국제락페스티벌에서 하루에 30,000보를 걷고 뛰고 뒹굴고도 괜찮은 나를 발견했다. 매일 저녁 투덜거리지만 꾸준히 박스에 갔던 보람이 있었다.

크로스핏은 요즘도 꾸준히 나가고 있다. 그 중 역도에 재미를 붙였다. 역도는 보이는 것과 다르게 고요한 운동이다. 자신의 한계를 알아야 나음 스텝을 밟을 수 있다. 무거운 무게를 들어 올리기 위해서 찬찬히 쌓아 올려야 하는 주춧돌이 많다. 하지만 매일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는 없다. 무게를 들어 올릴 수 있는 날들이 있기도 하지만, 들어 올릴 수 없는 날들도 있다. 오히려 들지 못하는 날들이 쌓이기 때문에 버틸 수 있는 날이 온다. 역도의 미학에 대해서는 나중에 긴 글로 작성해보려 한다.

시간관리

난 정말 계획표를 짜지 못하고 계획을 짜더라고 실천을 못하던 유형의 사람이었데 5월의 어느날 저녁에 체력 없이 늘어져있는 시간들이 너무나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저녁 시간을 30분 단위로 쪼개서 기록을 하면 내 생활 패턴을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날 이 구글 시트를 만들었다.

보시다시피 많은 칸이 비어있다. 5월은 크로스핏을 갓 시작한 시기였기에 우선적으로는 회사와 운동에 익숙해지는 게 목표였다. 기절해서 잠에 들었던 날은 솔직하게 기절잠이라고 적었다. 이 계획표는 하반기에 빽빽하게 채워지게 된다.

2023년에 시작한 일 중 가장 잘 한 일이 아니었나 싶다. 덕분에 나에게 남아있는 시간과 할당해야 하는 시간을 계산하는 방법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조금 더 발전시켜서 꾸준히 하고 싶다.

도시락

회사에 식당이 없기 때문에 매주 도시락을 챙겨갔다. 외부 음식을 너무 자주 먹으면 속이 더부룩했다. 매주 메뉴를 고민하고 오일분의 도시락을 만드는 건 생각보다 어려웠지만 루틴 안에 포함을 시키니 주말이면 자연스럽게 밀프렙을 만들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건강하게 먹을지 고민했다.

하반기 : 방통대와 빙글빙글 춤을 추다 대학원 지원까지

방통대

방통대 방통대 방통대! 하반기에는 방통대에 대한 기억 밖에 없다. 나는 방송통신대학교 통계학과 3학년에 편입한 상태이다. 상반기에도 수강 신청을 하긴 했었으나… 전혀 듣지를 못했다. 간혹 일을 하다 필요한 정보가 있으면 한 두강을 보긴 했지만 형성평가도 완료하지 못했다. 하지만 하반기에는 조금 더 욕심을 부려보자는 마음으로 5과목을 신청한다. 고통의 시작 하반기에 내가 수강한 과목은 <표본조사론>, <바이오통계학>, <실험계획과 응용>, <데이터처리와 활용>, <수리통계학>으로 전부 3학년 과목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상반기에 2학년 과목으로 기초를 다져두고 들었어야 하는 과목들이나 그때는 그런 걸 몰랐다. 즐겁고 맑게 대책 없이 신청했다.

왜 통계학과냐면 회사에서 t-test나 ANOVA 같은 단어들을 듣게 되었고 몇 번 파이썬을 통해 간단히 구현을 할 일도 있었다. 또한, 데이터 분석가 job description을 살펴보면 가설을 세우고 검증할 수 있는 능력 등을 요구하는 걸 간혹 발견할 수 있었다. 시각화를 할 때도 어떤 식으로 하는 게 좋을지 그런 고민들을 자연스레 하다 보니 내가 통계적 기반이 너무 없는 상태로, 또 이 중요성도 느끼지 못한 채로 시장에 뛰어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욕심이 과해졌다. 시간을 들여 찬찬히 소화해야 할 것들이 많은데 우선 정보의 바다에 풍덩 뛰어들어 뇌 세포 주름 사이에 지식을 끼워 넣는 것과 비슷하게 공부를 하게 됐다. 아마 내가 방통대가 처음이고 또 이런 지식들을 받아들여 본 적이 없어서 너무 낙관적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퇴근 후에 일주일에 두세 번 강의를 듣는 것 만으로는 방통대 지식을 소화할 수 없다. 중간고사는 대부분 과제 전형이고 책을 찬찬히 살펴보면 시간이 걸려도 어떻게든 넘어갈 수 있다. 실제로 중간 과제는 거의 만점에 가까운 성적을 받았다. 하지만 기말 시험은 다르다. 꼼꼼한 이해와 수식에 대한 암기가 병행되어야 한다. 특히 나의 경우에는 통계학의 기초 베이스가 없기 때문에 몇 번이고 책을 반복해야 조금이라도 이해를 할 수 있는데 시험을 보기 위한 공부에만 치중하게 된 게 너무 아쉽다. 모든 과목 과락만 넘기자! 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는데 실제로도 표본조사론 한 과목을 제외하고는 70점 중반의 점수를 받았다. 표본조사론은 욕심을 조금 더 가지고 임해서 좋은 성적을 받았는데 사실 성적에 대한 욕심이 있다기보다는 이걸 더 꼭꼭 씹어서 느리게 되새김질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느낌에 가깝다.

이건 11월 동안 기록한 나의 일상인데 공부에 의지를 잃지 않는 선에서 다른 취미생활과 공부를 어떻게 병행할 수 있는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주말 시간은 주말용 시트가 따로 있다) 통계 공부는 11월 12월 두 달을 합쳐 80시간쯤 했다. 4분기쯤이 되어서는 이 시간관리 표도 많이 수정이 되어 내가 쓰기에 가장 편안한 형태를 가지게 됐다. 이때쯤에는 체력도 많이 붙어서 처음 5월보다는 많은 발전을 이루게 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게 자기 관리나 열정보다는 과로에 가깝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난 욕심이 너무 많았다. 하고 싶은 것도 너무 많았다. 선택과 집중을 해야 했는데 모든 걸 다 손에 넣고 싶어 했다. 이 당시에는 간혹 두통이 올라왔는데 바보처럼 커피 중독이겠지~ 하고 넘겼다. 하여간 좋은 시그널은 절대 아니다!

대학원 지원

방통대 기말 시험을 보면서 집 근처에 있는 데이터사이언스 통계 대학원에 원서를 넣었다. 사실 내가 원서를 넣을 당시의 정원은 단 한 명으로 내가 대학원생이 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시도는 하는 것과 아닌 건 다르니까. 입학 준비를 하면서는 내가 왜 데이터를 공부하고 싶어 했는지에 대해 다시금 리마인드 할 수 있었다. 면접은… 망했다! 헤헤. 나름 준비를 한다고 가설 검정이나 유의 수준 알파가 뭔지 헷갈리는 개념들을 적어서 공부해 갔는데 교수님들은 나에게 그 정도도 바라지 않았다. 더 기초적인걸 물어보셨다. 내가 비전공자이기 때문일까 통계 기호를 읽을 수 있냐고 물어보셨는데 사실 읽을 줄 몰랐다! 사실 방통대 공부를 하면서 본 적은 있는데 익숙하지 않아서 어버버 했다. 분명 공부도 하고 특정 과목에서는 성적도 나쁘지 않게 받았는데 난 공부를 제대로 한 게 맞을까? 수학공식 그냥 파이썬으로 계산해서 잘 모릅니다. 필요하다면 공부하겠습니다 했다. 헤헤…… 그리고 머신러닝 관련 지식들도 물어보셨는데 다행히 거기는 긴장한 상태이지만 더듬더듬 대답을 했다. 아직 결과는 나오지 않았지만 아마 떨어질 것 같다! 그래도 준비를 어떤 식으로 해야 할지 경험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는 거에 의의를 두려고 한다. 고생했어 나!

베이스

아차! 하반기에는 베이스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다. 너무 머리만 쓰는 직업을 가졌고 머리만 쓰는 취미 밖에 없었기에 감각적으로 몸을 쓰거나 균형을 맞추는 연습을 하고 싶었다. 어렵다! 그리고 즐겁다. 그리고 취미이기에 욕심을 낼 필요가 없어서 그럴까 마음과 몸이 매우 편안하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완전히 압도되어 있었다. 질문이나 실수를 용인하지 않는 환경에 오래 노출되다 보면 사람은 완벽주의라는 강박에 빠지게 된다. 무언가 하나를 내려놓아도 될 텐데 욕심이 너무 과해서 효율과 자기 계발이라는 명목하에 자기 학대를 했던 것 같다. "비전공자라서 못하니까", "적어도 당장 대학원은 졸업해야", "많이 부족하시니까요." 이런 말들에 중심을 잃었다. 안정을 찾은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저것들을 해내도 나는 완벽한 사람은 아니었을 거다. 새로운 과제는 끝없이 생겨날 거고 그때마다 '모든 걸' 잘할 수는 없다. 그때는 몰랐지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것 같다. 몇 달간 긴장 상태에서 살았던 나머지 퇴사를 하고 나서 강한 번아웃이 찾아왔다. 나는 '이렇게까지 많이' 할 수 있는 사람이었지만 동시에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다만 확실한 건 나는 욕심이 너무 많은 나머지 중심을 잃을 수 있는 사람이란 거다!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생각도 너무 많다! 진퇴양난!

2024년의 목표 : 반박자 느리게!

2024년의 목표는 ‘반박자 느리게’다. 나는 욕심이 많고 아직은 내 인지 자원과 심리 자원을 잘 관리하지 못한다. 가끔 폭주해서 과로를 하기도 한다. 나는 의식적으로 쉼을 의식하고 마음의 여유를 가진 상태로 상황을 관망하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선택과 집중을 할 수 있는 판단력을 길러야 한다. 이런 계획성 없이 할 일을 주섬주섬 늘어놓기만 하다가는 무언가 열심히는 했는데 남는 건 없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시간을 흘려보내고 무언가를 하긴 했다는 착각에 빠지지 않으려면 천천히 꼭꼭 씹어 삼킬 수 있어야 한다. 그물망이 큰 채에 수천 톤의 흙을 쏫아부어 사금이 걸리기를 바라기보다는 의식적으로 채를 촘촘하게 만들었다가 풀 수 있는 유연함과 노련함을 가지고 싶어. 지식의 집합체가 아니라 지혜를 활용할 수 있는 지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역시 무엇이든 즐겁게 할 수 있는 마음이다! 꾸준함과 즐거움 그리고 메타인지가 2024년의 최종 목표다. 단순히 바지런을 떨면서 바쁜 척을 하는 것보다 무엇을 언제 어떻게 해야 할지를 전략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욕심과 불안함을 잘 다스리고 현명한 목표 설정을 하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상반기를 잘 보냈는가?

점수를 매겨본다. 100점 만점에 30점. 사실 나는 나에게 후해져도 된다. 그럼에도 30점이라는 점수를 준 이유는 "잘 쉬지 못했기 때문이다" 쉬는 것도 '잘' 쉬어야 한다니 만성 한국인병 아닌가요. 스스로에게 너무 박한 거 아닌가요?

맞다. 박하다. 후해지는 연습을 하고 싶다. 내가 실수하고 실패하고 엉망진창으로 해둔 것들이 많아도 "겨우 이것밖에 못해?!"가 아니라 현재의 상태를 살펴보고 지금의 체력과 정신 에너지 자원으로 이 정도를 해내다니 정말 잘했구나 하고 말하고 싶다. 의사도 쉬라고 했다. 근데... 안 쉬었다.......... 왜 효율적으로 살지 못하냐고 타박하며 괴로워했다. 과거에는 계획과 행동 사이에 시간 갭이 별로 없는 사람이었는데 요즈음에는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는 준비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럴 수 있다. 쉬어야지 말을 하면서 속으로는 스스로에게 실망했다. 우울해했다. 이딴 정신머리를 가지다니... 하면서 욕했다. 지금도 이 글의 어조 자체가 나한테 박하다. 그래서 앞으로는 '잘 쉬었는지'를 기준으로 나에게 칭찬 스티커를 붙여주려고 한다. 효율성이 아니라 흥미와 즐거움을 위주로 하루를 평가해 보는 몇 개월을 보내보려 한다. 높은 기준을 세우고 실패했을 때 스스로에게 엄격해지는 사람이 아니라 여유와 자기 속도에 맞춰 사는 사람이 되고 싶다. 오랜만에 30분 단위 계획표도 다시 만들었다. 그간 '하는 게 없다'는 생각에 쳐다보질 못했다. 오늘은 베이스를 치고 좋아하는 카페에 와서 달달한 디저트를 먹으며 블로그를 정리했다. 글을 쓰면 머릿속에 정리가 되어 좋다. 중간에 앵두랑 장난도 쳤다. 앵두는 카페에서 챙겨주는 고양이의 이름이다. 앵두와 점례 두 마리가 있는데 아주 착하고 귀엽고 고양이다운 친구들이다. 자기 욕구에도 솔직하고 사랑받길 좋아한다. 구석에서 늘어져서 하품을 하기도 한다. 고양이랑 놀다 보면 머릿속에 엉킨 생각들이 사라진다. 그래서 고양이가 좋다. 고양이의 태도로 삶을 살아가고 싶다.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래서 오늘은 잘 쉬었니?

잘 쉬었습니다.